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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type="text">깊은데로가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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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야곱의 축복</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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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7-10-08T12:05:37+09:00</published>
      <updated>2011-12-22T08:07:09+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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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최용우</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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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img src=&quot;http://cyw.pe.kr/1/5/4.jpg&quot; alt=&quot;1.jpg&quot; title=&quot;1.jpg&quot; width=&quot;130&quot; height=&quot;107&quot; style=&quot;WIDTH: 130px; HEIGHT: 107px; CURSOR: pointer&quot; /&gt;&lt;/p&gt;
&lt;p&gt;야곱이 죽기 전에 열 두 자녀들을 불러모으고 각각에게 예언을 한다.&lt;br /&gt;1.르우벤은 장남이지만 정욕을 절제하지 못해서 지극히 작은자가 되고 말았다. 육신의 절제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 주색잡기(酒色雜技)는 패가망신의 원인이다.&lt;br /&gt;2.시므온과 4.레위의 비극은 그들의 참지 못하는 분노였다. 분노에 의한 살인을 일삼았고 포악한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분노는 큰 범죄의 원인이며 분노하는 자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심판을 받게 된다.(마5:22)&lt;br /&gt;3.단은 심판하는 일을 하며 살 것이다. 삼손이 단지파의 후손이다.&lt;br /&gt;5.유다라는 이름은 &apos;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apos;(창29:35) 유다는 광야길을 가는 동안 선두에서 행진하였고 가나안 전쟁에서도 선두가 된다. 르우벤이 잃어버린 특권을 유다가 이어받아 유다지파에서 예수님이 태어난다.&lt;br /&gt;6.납달리는 자유로운 암사슴이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lt;br /&gt;7.갓은 원수의 추격을 받아도 오히려 원수를 추격할 것이다.&lt;br /&gt;8.잇사갈은 열심히 수고하고 일하면서 살 것이다. &lt;br /&gt;9.아셀은 &apos;복있는자.&apos; &apos;기쁜자&apos;란 뜻이다.&lt;br /&gt;10.스블론은 갈릴리 해변 시돈과 인접한 지역에서 살 것이다. &lt;br /&gt;11.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어서 특별한 축복을 해준다.&lt;br /&gt;&amp;nbsp;너는 담장 넘어로 뻗은 나무 가지에 푸른 열매처럼&lt;br /&gt;&amp;nbsp;하나님의 귀한 축복이 삶에 가득히 넘쳐날거야&lt;br /&gt;&amp;nbsp;너는 어떤 시련이와도 능히 이겨낼 강한 팔이 있어&lt;br /&gt;&amp;nbsp;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와 언제나 함께 하시니&lt;br /&gt;&amp;nbsp;너는 하나님의 사람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lt;br /&gt;&amp;nbsp;나는 널 위해 기도하며 네 길을 축복할거야&lt;br /&gt;&amp;nbsp;너는 하나님의 선물 사랑스런 하나님의 열매&lt;br /&gt;&amp;nbsp;주의 품에 꽃피운 나무가 되어줘.&amp;nbsp;&amp;nbsp;&amp;nbsp; - 소리엘&amp;lt;야곱의 축복&amp;gt; 가사&lt;br /&gt;12.베냐민은 사나운 기질의 소유자라 물어뜯는 이리라고 하였다. ⓒ&lt;br /&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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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의 축복</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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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7-10-01T09:59:24+09:00</published>
      <updated>2011-12-20T05:35:39+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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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최용우</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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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img src=&quot;http://cyw.pe.kr/1/5/3.jpg&quot; alt=&quot;1.jpg&quot; title=&quot;1.jpg&quot; width=&quot;130&quot; height=&quot;107&quot; style=&quot;WIDTH: 130px; HEIGHT: 107px; CURSOR: pointer&quot; /&gt;&lt;/p&gt;
&lt;p&gt;&amp;nbsp;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이 정한 때에 오며, 그 정확한 시간과 축복의 내용은 우리가 알 수 없다. 악인이 형통하고 복을 받는 것 같고, 예수 믿는 다고 하는 사람들은 지지리도 가난하고 못살면서 고통을 받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낙심하거나 실망하지 말 것은 하나님은 어느 순간이 되면 생각을 초월한 큰 축복을 내려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고통의 순간에는 이해도 되지 않고 힘도 들지만, 잘 참고 인내하면 나중에 반드시 그때 그 순간이 꼭 필요했었다고 인정하며 감사하게 될 것이다. &lt;br /&gt;이스라엘은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할 때 당시 관습과는 달리 장자인 므낫세는 왼손으로 축복하고 차자인 에브라임은 오른손으로 축복한다. 이스라엘이 왜 그렇게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lt;br /&gt;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달라고만 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께 더 많이 바치고 사람들에게 더 많이 나누어야 한다. &lt;br /&gt;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문제를 만났을 때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도전해서 풀어나가야 한다. 그 문제를 잘 풀면 하나님의 큰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거저 받으면 재미가 없지 아니한가.&lt;br /&gt;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시키는 일만 하지말고, 일을 찾아서 더 해야 한다. 의무만 다하지 말고 의무 이상을 하면 생각지 않은 큰 축복이 생각지 않은 곳에서 온다. 현세와 내세에 복을 받는다.&lt;br /&gt;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감싸주고 용서해야 한다.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미워하는 사람은 복이 떠나간다.&lt;br /&gt;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크고 넓게 생각해야 한다. 한가지 면만 보고 경거망동하면 패가망신한다. 하나님이 두 눈을 주신 것은 균형적으로 보라는 뜻이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lt;br /&gt;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불철주야 피나는 노력과 땀흘리는 헌신이 필요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amp;nbsp; ⓒ최용우 2007.10.1&lt;/p&gt;
&lt;p&gt;&amp;nbsp;&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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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오분의 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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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7-09-22T21:01:23+09:00</published>
      <updated>2011-10-25T07:17:30+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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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최용우</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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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img src=&quot;http://cyw.pe.kr/1/5/2.jpg&quot; alt=&quot;1.jpg&quot; title=&quot;1.jpg&quot; width=&quot;130&quot; height=&quot;107&quot; style=&quot;WIDTH: 130px; HEIGHT: 107px; CURSOR: pointer&quot; /&gt;&amp;nbsp;&lt;/p&gt;
&lt;p&gt;에굽에 흉년이 든 7년 동안 애굽의 모든 재산이 요셉의 손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백성들이 돈으로 곡식을 사 먹었다. 돈이 다 떨어지자 짐승을 몰고 와서 곡식을 사 먹었고, 결국 &quot;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서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quot;(19절) 7년 흉년이 끝나갈 즈음에는 몸뚱이만 남게 되었다. 요셉은 이 즈음에 2대 8 비율의 &apos;토지법&apos;을 세운다.&lt;br /&gt;에굽의 모든 것이 왕에게 집중되게 하는 2대8 토지법은 오늘날 우리의 인생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 2대 8이라는 말은 내 수입 중에 20%가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말이 된다.&lt;br /&gt;평범한 일반 사람이 1년에 2천5백만원씩 번다고 가정할 때 40년 동안 노동을 해서 벌 수 있는 돈은 10억 정도이며, 그 중에 20%인 2억을 노후자금으로 저축해야 은퇴 후 노년에 사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수입의 20%는 무조건 저축하는 습관이 되어 있어야 한다. &lt;br /&gt;자(資)를 본(本)으로 삼는 자본주의는 몇 몇 나라 이외에 대부분의 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경제정책인데, 자본주의의 결말은 항상 2대 8로 끝이 난다. 즉 자본의 80%를 20%의 특정한 사람들이 독식하여 사용하고, 자본의 20%를 80%의 사람들이 나누어 사용하는 양극화 현상이 자본주의의 결말이다. 이는 마치 요셉에 의하여 나라의 모든 재산이 바로왕에게 집중되고, 그 후로 역사상 가장 극심한 고통과 고난이 시작되었던 것과 같다. &lt;br /&gt;나라는 점점 부강해지는데, 백성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상위 20%에 들어가는데 성공한 사람들에게 자본주의는 천국이나 다름없겠지만 말이다. &lt;br /&gt;자본주의 체재에서는 심지어 교회조차도 2대 8의 법칙에 따라 상위 20%의 교회는 80%의 헌금이 집중하여 풍족하고, 80%는 나머지 20%의 재정으로 겨우 연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용우 2007.9.24&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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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입애굽기</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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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7-09-17T09:32:28+09:00</published>
      <updated>2011-08-22T01:57:33+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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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최용우</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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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img src=&quot;http://cyw.pe.kr/1/5/1.jpg&quot; alt=&quot;1.jpg&quot; title=&quot;1.jpg&quot; width=&quot;130&quot; height=&quot;107&quot; style=&quot;WIDTH: 130px; HEIGHT: 107px&quot; /&gt;&lt;/p&gt;
&lt;p&gt;사람들이 출(出)애굽기는 잘 알아도 입(入)애굽기는 잘 모르는 것 같다. &lt;br /&gt;모세가 400만 민족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한 것이 출애굽이었다면, 야곱이 거의 200명 가까운 식솔들을 이끌고 애굽으로 들어간 창세기 46장의 기록은 &apos;입애굽기&apos;이다. &lt;br /&gt;가인은 농사를 짓는 농경민족의 최초 조상이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물이 풍부한 &apos;땅&apos;이 있어야 하고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지어 수확한 다음 그것을 적들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창고를 만들고 튼튼한 성을 쌓는다.&amp;nbsp; &lt;br /&gt;아벨은 양을 치는 수렵민족의 최초 조상이다. 양을 치기 위해서는 산이나 들판에서 살아야 하고 산은 항상 춥고 배가 고픈 곳이며 일정한 거처가 없어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한다. &lt;br /&gt;그런데, 가인의 농경민족은 농사일이라는 것이 중노동이기 때문에 춥고 배고픈 민족인 수렵민족을 잡아다가 노예로 일을 시킨다. 지금까지 인류의 역사는 이런 형태로 계속 반복되어오고 있다.&lt;br /&gt;수렵민족인 야곱은 거대한 농경민족이었던 애굽의 힘 밑으로 동족들을 데리고 스스로 들어가 노예가 된다. 그렇지 않아도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노예생활까지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 &lt;br /&gt;오늘날 농경민족의 후예는 &apos;자&apos;를 &apos;본&apos;으로 삼는 &apos;자본주의&apos;이다. 돈이면 다 된다는 거대한 자본주의의 애굽 아래로 수많은 야곱 목사님들이 성도들을 이끌고 들어가는 중이다.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돈이면 다 된다는 자본의 노예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lt;br /&gt;&quot;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가겠고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올 것이며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quot;(46:2-4절) 마치 하나님이 요셉을 애굽으로 데려간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야곱 목사님들의 논리도 대부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한다. *&amp;nbsp; ⓒ최용우 2007.9.17&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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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궁금한 것은 못참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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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7-09-10T22:00:44+09:00</published>
      <updated>2011-08-18T10:41:17+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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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최용우</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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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amp;nbsp;&lt;img src=&quot;http://www.cyw.pe.kr/xe/modules/editor/components/emoticon/tpl/images/b/36.jpg&quot; alt=&quot;36.jpg&quot; title=&quot;36.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초등학교 2학년 때 주일학교에 처음 나갔던 그날 들었던 이야기가 &apos;요셉의 꿈&apos;이었다. 여선생님이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그림까지 그려와서 요셉의 일생을 신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요셉이 자신을 숨기고 형들과 아버지를 고통스럽게 하다가 갑자기 자신이 요셉인 것을 짜잔! 하고 밝히면서 엉엉 운다.(1-3절) &lt;br /&gt;그때 내가 손을 들고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quot;요셉이 형들을 처음 보았을 때 왜 자기가 요셉인 것을 당장 밝히지 않고... 형들과 아버지가 마음고생을 심하게&amp;nbsp;시킨 다음에 자신이 요셉인 것을 밝혔을까요?&quot; 선생님이 갑작스런 나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면서 얼굴이 빨개지기에 아! 공과공부 시간에는 질문을 하면 안 되는거구나 하고 깨달았다.&lt;br /&gt;그래도 계속 내 마음속에는 &apos;하나님은 정말로 요셉의 꿈을 이루어 주시려고 애굽에 7년 흉년을 내려 애먼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신 것인가?&apos; &apos;하나님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3대에 걸쳐 계속 &apos;가나안 땅을 준다&apos;고 하셨는데, 야곱 식구들은 애굽으로 이민을 갈 것이 아니라 애굽에서 양식을 가져다 먹으면서 그냥 가나안 땅에서 버텼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400년 후에 그 후손들이 애굽을 탈출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이런 의문이 계속 들었다. &lt;br /&gt;형들은 요셉을 팔아버린 사실을 어떻게 몇 십년 동안이나 속일 수 있었을까? 요셉이 아버지를 만나서 &apos;형들의 만행&apos;을 일러 바쳤을까? 모른 척 했을까? 아버지가 요셉을 얼마나 편애하며 사랑했는지 잘 아는 형들은 요셉이 자신들의 만행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에 떨었을까? 떨지 않았을까? &lt;br /&gt;나는 아직도 이런 것들이 진짜로 궁금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이런 궁금증은 마음속으로만 간직해야지 입 밖으로 냈다가는 당장에 믿음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거나 이상한 사람이 된다는 것쯤은 눈치를 챌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궁금한 것은 참을 수가 없다. ⓒ최용우 &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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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유다, 유대 ,유태인</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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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7-09-03T09:50:13+09:00</published>
      <updated>2011-07-25T11:03:02+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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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최용우</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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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img src=&quot;http://www.cyw.pe.kr/xe/modules/editor/components/emoticon/tpl/images/b/35.jpg&quot; alt=&quot;35.jpg&quot; title=&quot;35.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44장의 주인공은 유다이다.(14,16,18절) 유다는 야곱의 넷째아들 이었으나 위기의 순간에 특유의 대표자다운 지도력을 발휘하여 사태를 해결해 나간다. 이스라엘인들을 &apos;유태인&apos;이라고 부르는데, 유태인은 &apos;유다인&apos;이다. 야곱의 열 두 아들 중 장남 &apos;르우벤&apos;도 있고 &apos;요셉&apos;이라는 세계적으로 탁월한 지도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apos;유다&apos;가 전면에 드러난 것일까? &lt;br /&gt;0.25%=25% 라는 야릇한 등식이 있다. 0.25%는 세계 인구에서 유태인이 차지하는 비율이고, 25%는 역대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유태인의 비율이다. 노벨상 수상자 4명 중 1명이 &apos;유다인&apos;이라니 참 놀랍다.&lt;br /&gt;자녀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돌아오면 한국인 엄마는 &quot;오늘 뭘 배웠니?&quot; 하고 묻는데, 유태인은 &quot;오늘은 뭘 물었니?&quot; 라고 묻는다. 유태인은 자녀를 어릴 때부터 창의성, 통찰력을 살리는 교육을 하여 노벨상이라는 최고의 지적(知的) 열매를 따게 한다. 유태인은 지식에 대한 근본 개념을 이해시키는 기초 학문을 매우 중요시하며, 우리처럼 맹목적으로 지식을 주입시키는 주입식교육은 교육이라고 여기지도 않는다.&lt;br /&gt;유태인들을 만나서 무엇을 물어보면 이들 대부분은 즉답을 피하고 질문자에게 다른 각도에서 반문한다. 이들은 토론 교육과 함께 깊고 다양한 사고력을 유도해 각자가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내게 한다. 한국인처럼 모든 사람이 똑같은 것에 매달리지도 않고, 각자 독자적인 연구를 하며 창의력을 키운다. 즉, 다수에서 이탈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만의 창조성을 배양하는 훈련이 잘 되어 있는 것이다. &lt;br /&gt;기독교와 유태교는 구약성경을 함께 쓰기 때문에 뿌리가 같다. 그러나 유태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여러 선지자 중 하나로 간주한다. 그래서 기독교는 유태교를 용납하지 않는다. 또한 세계 각국에 흩어진 유태인들은 자신들만 선택받았다는 선민의식이 너무 강해 유대교 계율을 우선시 함으로 그 사회에 동화(同化)하지 못해 공동체 화합을 거부하는 무리로 찍혀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최용우 2007.9.3&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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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야곱의 자식사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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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7-08-27T12:28:08+09:00</published>
      <updated>2011-07-22T11:45:43+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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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img src=&quot;http://www.cyw.pe.kr/xe/modules/editor/components/emoticon/tpl/images/b/34.jpg&quot; alt=&quot;34.jpg&quot; title=&quot;34.jpg&quot; style=&quot;&quot; /&gt;&lt;/p&gt;
&lt;p&gt;야곱은 온 식구가 굶어죽을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냐민을 그들과 함께 보내지 않겠다고 한다. 야곱의 과도한 자식사랑은 요셉을 잃어버리게 만들었고, 이제 베냐민에게로 옮겨간 그 사랑이 온 식구들을 굶어죽이려 하고 있다. 자식을 향한 과도한 사랑의 감정은 이성적인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온 가족을 망하게 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간다.&lt;br /&gt;동물들의 자기 새끼 사랑은 눈물겹도록 헌신적이고 감동적이다. 하지만 일단 새끼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자라면 새기를 가차없이 내쫓아버린다. 그래도 어미를 떠나지 않으면 심지어 물어 죽이기까지 한다. 어미로부터의 독립 그 자체가 생존을 위한 본능적 행동인 것이다. &lt;br /&gt;사람도 어린 시절에는 부모의 절대적인 관심과 보호를 받으면서 성장하지만, 때가 되면 스스로 보금자리를 만들어 부모 곁을 떠난다. 동물이든 사람이든 자기 부모로부터의 독립은 곧 성숙을 의미한다.&lt;br /&gt;사람은 대체적으로 7살까지는 부모가 자녀의 육체(습관)와 생각(판단)의 선택을 해 주고, 12살까지는 생각(판단)의 선택을 해줄 수 있다. 그래서 7살 이전에 평생 가는 몸의 습관(버릇)을 만들어야 하고 12살 이전에는 사고(판단)의 훈련을 마쳐야 한다. 12살 이후에 자녀는 부모가 간섭할 수 없는 독립적인 인격이 된다. 유대인은 12살부터 성년으로 인정을 하고 우리나라도 12살부터는 범죄를 저지르면 본인이 죄값을 치루게 되어 있다. &lt;br /&gt;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성장에는 적절한 자극이 필요하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러나 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 부모의 관심과 보호가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적절하게 주어져야 자식은 건강하게 성장한다. &lt;br /&gt;자녀가 결혼을 할 때까지 따라다니며 과보호를 하면 오히려 자녀를 망치게 된다. 12살이 되면 자녀들이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주아야 한다. 맹수들이 드글거리는 야생으로 내보내서 자생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베냐민을 내놓지 않겠다고 버티던 야곱도 결국에는 베냐민을 에굽으로 보낼 수밖에 없게 되고 말았다.&amp;nbsp; ⓒ최용우 2007.8.27&lt;br /&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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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꿈이 이루어지는 순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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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7-08-20T11:09:18+09:00</published>
      <updated>2011-07-15T11:11:58+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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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최용우</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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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img src=&quot;http://www.cyw.pe.kr/xe/modules/editor/components/emoticon/tpl/images/b/33.jpg&quot; alt=&quot;emoticon&quot; title=&quot;emoticon&quot; style=&quot;&quot; /&gt;&lt;br /&gt;20여 년 전 요셉이 꿈을 꾸었는데, &quot;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quot; 이 말을 들은 형들은 &quot;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웃기지 마라 하하하&quot; 하면서 요셉을 미워하였다.&lt;br /&gt;요셉이 또 &quot;내가 또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해와달과 열한 별이 모두 내게 절하더이다&quot; 이번에는 아예 아비와 어미까지 몽땅 땅에 엎으려 절을 했다고 하니, 그 말을 들은 형들은 그를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와 미움이 가득해졌고 그 중에서도 시몬이 가장 적극적인 주동자가 되어서 결국 요셉을 제거해 버렸던 것이다.&lt;br /&gt;세월이 흘러 그 꿈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졌다. 그의 형제들은 마치 곡식단이 넘어지듯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요셉 앞에 넓죽 엎드려 절을 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요셉은 열 형제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으나 형제들은 아무도 요셉을 기억하지 못했고 알아보지 못했다.&lt;br /&gt;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요셉은 자신을 바로 드러내 형들을 즉시로 심판하지 아니하고 그 감정이 너무 격하여 물러가 한 참 울고 돌아온다. &lt;br /&gt;형들은 자신들이 당한 곤경 속에서 과거에 했던 자신들의 말과 행동들에 대해 후회를 한다. &quot;우리가 아우의 일로 인하여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quot;(21절) 열 형제들이 동생에게 못할 짓을 하고 돈을 받고 팔아 넘긴 인신매매, 아버지에게 허위보고 하여 가슴을 아프게 한 모든 죄들을 20년이 지난 후에 비로소 후회를 하게 된다.&lt;br /&gt;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노예로 팔면서 그의 꿈을 무산시켰다고 생각했지만(37:19-20), 하나님은 오히려 그 일을 이용해서 그 꿈을 성취시키셨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은 인간의 지혜와 지식을 완전히 초월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을 경외하는 모든 이들이 자신을 더욱 믿고 신뢰할 수밖에 없도록 일하시는 분이다. (롬11:33-36)&amp;nbsp; ⓒ최용우 2007.8.20&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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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풍년의 눈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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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7-08-12T23:37:04+09:00</published>
      <updated>2011-07-15T11:11:37+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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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최용우</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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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img src=&quot;http://www.cyw.pe.kr/xe/modules/editor/components/emoticon/tpl/images/b/32.jpg&quot; alt=&quot;emoticon&quot; title=&quot;emoticon&quot; style=&quot;&quot; /&gt;&lt;br /&gt;풍년이라 떠들지만 죽음의 아우성은 더욱 더하니 이 웬일인고 &lt;br /&gt;몇 해인가 끊임없이 흉년이기에 참아가며 바라던 올해의 농사&lt;br /&gt;풍년은 풍년이되 벼 값이 모래 값만 못하니 이 어쩌잔 말인가&lt;br /&gt;빚 조르는 앞집에 김주사 뒷집에 박참봉 하루에도 열 두번 &lt;br /&gt;참다 못하여 도지(세금) 바치고 남은 벼 다 가지라 내주어도 &lt;br /&gt;돈 돈만 내라고 담배통으로 사람을 치네&amp;nbsp;&amp;nbsp;&amp;nbsp; &amp;nbsp;-허정호(1930 조선일보) &lt;br /&gt;이 詩는 일제시대 친일파에게 농사지은 것을 다 빼앗기고 고통을 당하는 소작농의 고달픈 심정을 잘 표현한 詩이다.&lt;br /&gt;&lt;br /&gt;요셉은 실수를 했다. 그것은 그의 동족을 바로의 종으로 만들어 400년 동안이나 종살이를 하게 한 것이다. 모세가 다시 백성들을 구해 에굽을 탈출하기까지 요셉의 실수는 실로 수많은 동족들을 대를 이어 고통스럽게 했다. 이는 마치 이완용이가 조선을 일본에 팔아버린 것과 같다. &lt;br /&gt;요셉의 실수는 풍년이 들었을 때 그냥 &apos;거두어들였던&apos;(48절) 곡식을 흉년이 들자 돈을 받고 &apos;팔았다&apos;(56절)는 것이다. 돈주고 거둔 것이 아니니 줄 때도 그냥 주었어야 하는데 왜 돈을 받고 팔았을까? 에굽의 역사에서 요셉이 총리로 있었던 시기를 &apos;힉소스 왕조&apos;시대라고 구분하는데 에굽 역사가들은 이시기를 &apos;치욕의 시대&apos;로 분류하면서 자신들의 역사에서 삭제해 버렸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lt;br /&gt;오늘날 자본의 논리는 결코 성경적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돈을 받고 우리에게 주는 것이 하나라도 있는가? 하나님은 모든 것을 공짜로 그냥 주신다. &lt;br /&gt;그냥 주어야 할 아사미(餓死米)를 요셉은 돈을 받음으로 애굽 온 땅과 백성과 더불어 자신의 민족들까지 모두 바로의 손으로 &apos;소유권 이전&apos;을 시키고 만 것이다. 무서운 흉년에서 살아남은 건 좋았는데 그 대가로 땅과 몸뚱이까지 바치게 되었으니 안타깝다. &lt;br /&gt;그 인간의 어리석음은 오늘날에도&amp;nbsp; 눈 가리고 아웅 하면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amp;nbsp; ⓒ최용우 2007.8.13&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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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기다림을 통과한 후에</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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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7-08-06T16:48:07+09:00</published>
      <updated>2011-07-15T11:11:05+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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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최용우</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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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img src=&quot;http://www.cyw.pe.kr/xe/modules/editor/components/emoticon/tpl/images/b/31.jpg&quot; alt=&quot;emoticon&quot; title=&quot;emoticon&quot; style=&quot;&quot; /&gt;&lt;br /&gt;성경은 오랜 기간의 역사를 간단히 몇 줄에 기록하기 때문에 여간 조심해서 읽지 않으면 그 기록 사이에 숨어있는 &apos;시간&apos;을 놓치기 일쑤이다. 그래서 성경의 인물들은 너무 쉽게 하나님을 만나는데, 나는 왜 이렇게 하나님을 뵙기가 힘들까? 하고 고민하게 된다. 그러나 성경의 인물들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평생에 걸친 &apos;기다림&apos; 속에 살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평생에 몇 번의 만남이 성경에서는 몇 줄로 기록되기 때문에 쉽게 자주 만난 것처럼 보일 뿐이다. &lt;br /&gt;요셉이 에굽으로 팔려가 10년이 지난 어느 날 억울하게 감옥에 갖힌다. 그리고 감옥에서 또 1년이 흐른다. 시위대장 보디발은 요셉이 죄 없음을 알았음에도 그의 아내가 무서워서 요셉을 감옥에서 꺼내주지 못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의 투기는 무섭다. &lt;br /&gt;요셉이 감옥에서 두 관원의 꿈을 해석해 준 후 또 2년이 지나갔다.(41:1절) 요셉은 믿음의 사람이어서 자신의 꿈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추호도 의심 없이 굳세게 믿었을까? 하나님이 너무 오랫동안 역사하지 않음으로 자기의 꿈이 과연 이루어지고 있는지 흔들리지는 않았을까? &lt;br /&gt;성경의 짧은 기록에는 그러한 고민의 흔적이 없지만, 요셉의 오랜 기다림 속에 그러한 고민의 흔적이 있다. 과거의 하나님은 지금도 똑같이 역사 하신다. 하나님은 오랜 기다림의 시간을 통과한 후에 역사 하시고, 그 기다림의 과정을 온전히 마친 후에야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높이심과 축복 부으심을 경험하게 된다. &lt;br /&gt;시간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며, 하나님에게는 시작도 끝도 없으시니 당연히 시간도 없으시다. 조급하고, 바쁘고, 급한 것은 인간의 마음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께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으시니 하나님이 하루만 기다려도 인간 세상에서는 1천년이 지나간다. &lt;br /&gt;우리의 형편을 아시고 우리를 구원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면 그 날이 온다. 반드시.&amp;nbsp; ⓒ최용우 2007.8.6&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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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는일 마다 잘되는 사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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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7-07-30T10:46:36+09:00</published>
      <updated>2011-07-15T11:10:40+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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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최용우</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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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img src=&quot;http://www.cyw.pe.kr/xe/modules/editor/components/emoticon/tpl/images/b/30.jpg&quot; alt=&quot;emoticon&quot; title=&quot;emoticon&quot; style=&quot;&quot; /&gt;&lt;br /&gt;요셉은 한 마디로 하는 일마다 잘되는 행운의 사람이었다. 그가 무슨 일을 하든 다 잘 되도록 하나님이 도와 주셨기 때문이다. 요셉은 보디발의 종으로 1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았지만 모진 고통과 굴육을 당한 것은 아니다. 시위대장은 지금의 청와대 경호실장 정도의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인데, 그런 세도가의 모든 재산과 일을 도맡은 총무이니 &apos;종&apos;이라는 이름 외에는 아쉽거나 부러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었다.&lt;br /&gt;하나님이 요셉을 하는 일마다 잘되게 도와주신 것은 요셉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였기 때문이다. 요셉은 소년시절에 꾸었던 두 편의 꿈을 마음에 심고 절대한 신앙으로 간직하면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줄기차게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요셉을 적극적으로 도우신 것이다. &lt;br /&gt;자고이래로 남자가 여자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에는 망하고 만다. 최초의 남자 아담은 여자를 다스리지 못해 하나님을 닮았던 위대하고 거룩한 신격생명을 잃어버렸다. 유대인들이 성군으로 떠받드는 다윗은 밧세바에게 홀려서, 솔로몬은 여자를 다스리지 못하고 비위를 맞추다가 여자들이 가지고 들어온 우상단지 때문에 망하고 만다.&lt;br /&gt;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데, 요셉은 날마다 요염한 모습으로 교태를 부리는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과연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여 쓰실만한 기개를 가진 훌륭한 대장부라고 할 수 있다.&lt;br /&gt;간음(姦淫)은 남, 여 성기의 구조상 남자는 능동적이고 여자는 피동적이이기 때문에 남자의 동의가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남자가 욕심을 품으면 언제, 어디서나, 그 상대가 누구든 기어이 욕심을 채울 수 있지만, 여자는 남자가 원치 않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apos;간음&apos;은 남자 쪽에서 &apos;하지 않겠다&apos;고 하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 책임은 모두 남자가 져야 한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혀온 여자를, 예수님께서 정죄하지 않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여자를 다스려 악을 이긴 요셉이 하는 일마다 형통하는 것은 당연하다. ⓒ최용우 2007.7.30&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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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름을 남긴 유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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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7-07-23T19:12:59+09:00</published>
      <updated>2011-07-15T11:10:20+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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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최용우</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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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img src=&quot;http://www.cyw.pe.kr/xe/files/attach/images/24226/137/230/230062.jpg&quot; alt=&quot;230062.jpg&quot; title=&quot;230062.jpg&quot; width=&quot;104&quot; height=&quot;163&quot; style=&quot;CURSOR: pointer&quot; /&gt;&amp;nbsp; &lt;/p&gt;
&lt;p&gt;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족장시대를 지나 야곱의 열두 아들이 주인공인 열두지파 시대가 이제 막 열린다. 열두 아들 중 특별히 요셉의 이야기가 장황하게 진행되는 것 때문에 인류의 역사가 요셉으로 이어져 갈 것 같은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요셉 이야기 가운데 갑자기 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 이야기가 불쑥 끼어 든다. &lt;br /&gt;요셉의 믿음과 신앙의 가치는 영원히 고귀한 것이며 또 본이 될 만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apos;유다&apos;를 주목하셨다. 그렇다면 &apos;유다&apos;는 어떤 사람인가? 한마디로 개잡놈이다. 어디 한군데 흠모할 만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흠 투성이의 인간이다. &lt;br /&gt;유다는 자기 형제들을 떠나(1절)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악한 족속인 아둘람 사람과 사귀고, 하나님 앞에 큰 죄인인 가나안 여인과 동침한다.(2절) 그 결혼은 정상적인 결혼이 아니었기에 부인의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는다. 아마도 나이 어린 소녀를 겁탈한 조혼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낳은 자식들은 건강하지 못했고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악하기까지 했다. 유다는 아내가 죽은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욕정을 참지 못하고 창기에게 들어가 간음을 한다. 유다가 자기의 며느리를 창기로 알고 그에게로 들어간 일은 성경의 기록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행동일 것이다. &lt;br /&gt;인간적으로 봐서 유다는 결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이스라엘 사람들을 &apos;유다&apos;의 이름을 따서 유태인, 또는 유대인, 유다인이라고 할 정도로 &apos;유다&apos;는 후세에 그 이름을 길이 남기는 사람이 된다. &lt;br /&gt;구약의 모든 역사가 결국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가고 있는 구원의 역사라고 볼 때, 요셉이야기 조차도 유다로 이어지는 혈통과 역사이야기의 한 주변의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amp;nbsp; ⓒ최용우 2007.7.23&lt;br /&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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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어렵게 얻은 아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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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7-07-16T21:07:54+09:00</published>
      <updated>2011-07-15T11:09:51+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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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최용우</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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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img src=&quot;http://www.cyw.pe.kr/xe/files/attach/images/24226/134/230/230061.jpg&quot; alt=&quot;230061.jpg&quot; title=&quot;230061.jpg&quot; width=&quot;116&quot; height=&quot;162&quot; style=&quot;CURSOR: pointer&quot; /&gt;&amp;nbsp; &lt;/p&gt;
&lt;p&gt;야곱이 사랑하고 아끼던 아내 라헬이 아이를 낳지 못해 애쓰다가&amp;nbsp; 7년 만에 요셉을 낳자 야곱은 요셉을 끔찍이도 편애하기 시작한다. 야곱이 극도의 공포 속에서 에서 형님을 만나러 갈 때 라헬과 요셉을 맨 뒷줄에 세웠던 것도 야곱 그들을 얼마나 끔찍이 아끼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lt;br /&gt;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죽자 야곱은 어미를 죽게 한 막내 베냐민을 탐탁치 않게 여기면서 더욱 요셉을 편애하여 옷마저도 다른 형제들과 다른 옷을 입힐 정도가 되었다. 야곱이 도에 지나칠 정도로 야곱을 편애한 이유는 &apos;오래 기다려 어렵사리 얻은 아들&apos;이기 때문이다. &lt;br /&gt;거기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요셉의 행동은 얄밉기까지 했다. 형제들은 자신들의 허물을 일삼아 찾아내어 아비에게 고자질하는 동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우월심(優越心)은 형님들과 심지어 아버지까지 기분을 상하게 하는 건방진 꿈을 꾸고 그걸 자랑스럽게 떠벌리다가 야단을 맞는다. &lt;br /&gt;몇 가지 사소한 일 때문이 아니고 그렇게 조금씩&amp;nbsp; 17년 동안이나 미움과 증오가 쌓이다 보니 형제들의 마음 속에는 언제부터인가 동생을 죽여야 속이 시원하겠다는 생각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lt;br /&gt;드디어 기회가 왔다. 요셉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멀리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형들은 요셉을 붙잡아 옷을 벗기고 마른 우물 안에 던져 넣었다가 우연히 지나가는 노예상인들을 보고 요셉을 다시 끄집어내어 그들에게 은 20을 받고 팔아버린다. &lt;br /&gt;여러 말 길게 할 필요 없이 한마디로 잘라 말하면, 그 모든 불상사들은 야곱이 요셉을 끔찍이 편애하면서 시작된 비극이다. 자녀들의 다툼은 부모에게 근심을 가져다 준다. 자녀들의 성격이 삐뚤어지지 않고 건실하게 자라도록 하는 것은 무모의 공정한 사랑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고약한 상황들을 오히려 역이용 하셔서 선한 방법으로 인류를 위한 큰 일을 진행시키신다. ⓒ최용우 2007.7.16&lt;/p&gt;
&lt;blockquote&gt;&lt;/blockquote&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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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떠나간 자들의 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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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7-07-09T15:02:54+09:00</published>
      <updated>2011-07-15T11:09:27+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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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e>최용우</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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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font size=&quot;2&quot;&gt;&lt;img src=&quot;http://www.cyw.pe.kr/xe/files/attach/images/24226/128/230/230059.jpg&quot; alt=&quot;230059.jpg&quot; title=&quot;230059.jpg&quot; width=&quot;166&quot; height=&quot;107&quot; style=&quot;&quot;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amp;nbsp;&lt;/span&gt;&lt;/font&gt;&lt;/p&gt;
&lt;p&gt;&lt;font size=&quot;2&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에서는 할아버지(아브라함)와 아버지(이삭)를 통해서 가나안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에서는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다만 자신의 소유가 너무 많아서 보다 넓은 곳으로 이주를 해야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과거에 그의 삼촌 롯이 &apos;보다 넓고 자기가 거느린 짐승들이 풀을 잘 뜯어먹도록 보기에 좋은 곳을 선택&apos;하여 사해 쪽으로 떠나갔던 것처럼 에서도 역시 자기의 소유를 이끌고 사해에 있는 세일 지방으로 떠나갔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에서가 머물게 된 곳은 과거에 이스마엘(창25:12-18)이 아브라함에게서 떠나 도망쳐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이렇듯 떠나간 자들이 도착하여 머물렀던 그 땅을 말라기 선지자는 황무하고 시랑(여우)가 방황하는 광야라고 표현한다.(말1:3)&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그런데,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가나안땅에 남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이 아니라, 떠난 자들의 후손들이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오랫동안 거절해 온 자들 곧, 에서의 후손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완악함과 순종치 않음을 인하여 그들을 버리고 새로운 자들을 택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롬11:25-32)&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우리는 떠난 자들의 후손들인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선택받은) 새로운 자들이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제1차공의회에서 &apos;에돔의 남은 자&apos;(암9:12)에 관한 예언을 인용하여 그 남은 자는 &apos;인류의 남은 자&apos;라고 했다. 에서(에돔)는 장차 온 인류 가운데 구원을 받게 될 인류의 남은 자의 예표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 가운데서 자기의 택하실 자를 부르시기 위해서 떠나가게 하시고 떠나간 자들 가운데 &apos;남은자&apos;를 숨겨두셨던 것이다. &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이제 택함 받은 우리는 &apos;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소리로&apos; 외쳐야 한다 &quot;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quot;(계7:9-10)&amp;nbsp;&amp;nbsp;ⓒ최용우 2007.7.9&lt;/span&gt;&lt;/font&gt;&lt;/p&gt;
&lt;blockquote&gt;&lt;/blockquote&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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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나님의 집</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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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lished>2007-07-06T13:56:57+09:00</published>
      <updated>2011-07-15T11:07:40+09:00</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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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ntent type="html">&lt;div class=&quot;xe_content&quot;&gt;&lt;p&gt;&lt;font size=&quot;2&quot;&gt;&lt;img src=&quot;http://www.cyw.pe.kr/xe/modules/editor/components/emoticon/tpl/images/b/78.jpg&quot; alt=&quot;emoticon&quot; title=&quot;emoticon&quot; style=&quot;&quot; /&gt;&lt;/font&gt;&lt;/p&gt;
&lt;p&gt;&lt;font size=&quot;2&quot;&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인간은 곤경에 처했을 때 그 곤경을 벗어나기 위하여 자주 하나님께 아첨하는 말로 서원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에굽에서 나와 광야 길을 가는 동안 하나님께 아첨하는 삶을 살았다. &quot;저희가 입으로 그(하나님)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quot;(시78:37-38) 그러나 곤경에서 벗어나면 곧 자신이 한 서원이나 약속을 잊어버린다. 이것이 인간의 적나라한 본래 모습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을 언제나 기억하고 계신다. 그리고 불현듯 생각나게 하시어서 양심에 아픔을 주시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 다시 나아오도록 이끄신다. 이것을 하나님의 붙드심(성도의 견인)이라고 한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야곱은 20년 전 하나께 한 서원을 잊었으니, 하나님깨서는 그 서원을 잊지 않으시고 야곱을 일깨워 약속의 장소인 &apos;벧엘&apos;로 이끌어주셨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벧엘(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며, 주의 백성이 언제나 있어야 할 상징적인 장소이다. 벧엘은 가끔씩 방문하는 여행지가 아니고 먹고 마시고 일하며 살아가는 곳이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가 특별한 곳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이 계시는 곳 그 어디나 벧엘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님이 오신 이후에는 성령님이 내주하시는 성도의 몸이 벧엘이 되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FONT-SIZE: 14px&quot;&gt;신약시대부터는 외적인 장소의 거룩은 그리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곳이 거룩한 벧엘의 장소가 되려면 화려한 장식이나 웅장한 대리석이 있어서 거룩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거룩한 성도가 있어서 거룩한 벧엘의 장소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교회 간판이 붙어 있다 해도 그곳에 싸움과 시기와 다툼과 미움이 가득하여 인간들의 불평 소리만 난다면 그곳은 교회가 아니다. 차라리 우리의 작은 가정이 기도와 성경봉독과 찬양과 그리스도의 사랑이 가득하여 성령님이 임재하신다면 거기가 바로 신약시대의 벧엘인 것이다. ⓒ최용우 &lt;/span&gt;&lt;/font&gt;&lt;/p&gt;&lt;/div&gt;</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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